"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가에서 여러 날 문상객을 접하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었습니다.
찾아주신 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일일이 표현하면 좋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차분하게 그럴 시간은 없고
이를 대신해서 요즘은 조문감사문자로 갈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인생의 큰 산 하나를 무사히 잘 넘기고 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가에서 여러 날 문상객을 접하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었습니다.
찾아주신 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일일이 표현하면 좋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차분하게 그럴 시간은 없고
마음은 표현해야 하니 찾은 방법이 조문 감사 문자였습니다.
요즘은 카톡이나 문자로 조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대세라고 하는데 간단한 텍스트도 좋지만 이렇게 그림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더 정중한 것 같아 가진 재주를 활용하여 작업해 보았습니다.
배경에는 한지를 깔고
하단부에 북망산을 상징하는 산맥을 얹고
상단에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사"인장을 찍었습니다.
내용은 살펴보니 이 내용이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는 어울려 담아 보았습니다.
가장 무난한 형태의 시안 1이었습니다.
실제로 시안 1을 대부분 선택하시네요.
배경에는 한지를 깔고
하단부에 북망산을 의미하는 산맥을 얹고
상단에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사"인장을 찍었습니다.
내용은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어울리는 내용 위주로 담아 보았습니다.
MZ 세대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잘 모르겠고 MZ 세대가 벌써 부친상이나 빙부상을 당해서는 안 되겠지요.
가장 무난한 형태의 시안 1입니다.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고 보수적인 장례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지요.
실제로 시안 1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북망산을 상징하는 산맥 대신 저승길을 상징하는 소나무밭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전설의 고향에서 꼭 저승하자는 이런 소나무밭을 지나 안개와 함께 사라졌지요.
북망산에 푸른 기운을 돌게 하여 방문해 주신 조문객이나 후손 모두에게 희망찬 푸른 미래를 담아 보았습니다.
비록 고인은 이승을 떠나 천국에 가셨지만 그 후세와 지인들은 이 땅에 남아 절망보다는 희망을
어둠보다는 빛을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의 경우 부친상, 빙부상 모두 슬픔과 설움에 잠겨 있기보다는 가족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례를 마무리 짓고 더욱 생동감 있는 시간들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북망산에 푸른 기운을 돌게 하여 방문해 주신 조문객이나 후손 모두에게 희망찬 푸른 미래를 담아 보았습니다.
푸른색은 하늘과 맞닿은 색이지요.
비록 고인은 이승을 떠나 삼도천을 건너셨지만 그 후세와 지인들은 이 땅에 남아
절망보다는 희망을 어둠보다는 빛을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의 경우 부친상, 빙부상을 겪으며
슬픔과 설움에 잠겨 있기보다는 가족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례를 마무리 짓고
더욱 생동감 있는 시간들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족단위의 여행을 떠나거나 평소 준비할 수 없는 성대한 가족모임을 가졌습니다.
준비하는 동안에도 준비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고
해당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은 큰 슬픔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좋은 기회였지요.
서로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우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끌어냈습니다.
골방에 박혀 슬픔만 되뇌면 심신이 피폐해진답니다.
살면서도 수많은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굳이 가장 힘들고 지칠 때 그 슬픔에 몰두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겠지만 남은 자들의 어두운 모습보다는 밝고 희망찬 모습이 더 반갑지 않을까요?
근엄하고 정중하되 정감과 사랑, 정이 넘치는 장례 문화야말로 우리의 장례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근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오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죽음과 소천"
죽음을 상징하는 북망산을 표현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오늘 소개한 자료는 우리 가족과 친족을 위해 준비한 자료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작업이랍니다.
혹 조문 감사 문자나 조문 감사 인사 관련 제작 문의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슬픔을 자꾸 되뇌고 싶지 않아서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부터는 또 열심히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여야겠습니다.
'살아있으매 찬연한 아름다움을 즐기리라!'